다음 시간까지 숙제 노트 제출해야한다, 프리드리히. 교과서를 세워 수업 종소리마냥 책상을 두드리면, 그와 동시에 복도 쪽에서 우악스런 광음이 들리고 저 멀리 사물함 어딘가에 축구공이 처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에서 누가 간이 축구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복도를 흘낏 쳐다본 베른하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늘도 창문이 깨지려나. 대답을 요구하듯 앞 쪽에 앉은 쌍둥이 동생을 쳐다보았지만, 어째 그는 지금 꺼내놓은 화제에 대해서 관심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점심시간은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다 못해 뛰어다니는 학생들로 아주 아수라장이었다. 그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앉아있는 똑같은 얼굴이 복도 너머를 아까부터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ㅡ 1학년이 빠져가지고. 일찍 좀 다녀라.
쾅. 이번에는 축구공이 교실 뒷문을 강타했다. 사담을 확실하게 끊어버린 귀를 때리는 굉음에 교실 안에 있던 몇몇 여학생들이 짜증을 냈다. 내일도 안내면 감점 처리되니까 오늘 집에 가서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열린 뒷문을 향해 들어온 축구공이 책상 위를 날았다. 책상 위에 걸쳐져 있던 공책이며 교과서가 그대로 책상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저 2학년인데요. 그딴 게 뭐가 중요해, 후배면 다 똑같아. 프리드리히는 4교시를 마치기 전부터 계속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2교시에는 운동장을, 3교시부터는 복도 넘어 보이는 3학년만 쓴다는 별관 건물을. 처음 마주쳤던 때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전부 아슬아슬하게 수업종이 울리기 전이었다. 본의 아니게 얼굴을 맞대는 횟수가 늘어날 즈음, 이 사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상습적인 지각생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반사된 빛이 어지러이 반짝이는 유리창 너머, 따스한 햇살이 떨어지는 창문가 일등석에 턱을 괴고 있는 옆모습. 지루하다는 듯 기색이 역력한 그 얼굴은 기억 속 그와 똑같은 것이었다.
ㅡ 오늘같이 흐린 날은 학주한테 걸리면 죽어. 너 운동장 50바퀴 뛰어봤냐? 뭐, 내 알 바는 아니고. 어쨌든 알아서 잘 들어가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제 앞에서 능숙하게 담을 넘어 사라지던 뒷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그 뒤를 쫓듯, 덩달아 담을 넘어 운동장을 달렸었다. 본관과 별관으로 갈리는 곳에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또 시선이 겹쳤다. 마치 처음부터 이쪽을 보고 있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제 시야에 뒤섞이는 청록의 빛깔. 괜히 들뜨는 기분에 고개를 재빨리 반대쪽으로 꺾었다. 현관을 지나 급히 뛰어가는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결국 지각을 했다. 쓸데없이 왜 그걸 듣고 있었을까. 뭐가 아쉬워서. 이런 걸 왜 의식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 기어이 높아진 목소리가 딴 생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동생을 가까스로 끌어올렸다.
"프리드리히!"
"응? 응. 아, 베른하드. 뭐라고 했어?"
예쁘장한 여학생이라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인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인 프리드리히를 향해 대답 대신 긴 한숨이 책상 위로 내리깔렸다.
# # #
봄날의 눈꽃마냥 하늘거리며 벚꽃이 지고 나니, 학교 담 위에는 붉은 장미꽃이 줄을 지어 제멋대로 피었다. 여학생들이라면 꺅꺅대며 좋아할,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의 담이겠지만 지각을 코앞에 둔 만년 지각생 앞에는 꽃이고 뭐고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그저 교문을 향해 쭉 달릴 뿐이었다. 손목에 매달린 시계를 확인할 틈도 없이, 쭉. 이번에 정말 덜미가 잡히면 엎드려뻗쳐로는 끝나지 않을 텐데. 프리드리히는 저번에 걸렸을 때를 떠올렸다. 달리다 말고 문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럴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알고, 부질없는 기대라는 것도 알았다. 아직 수업 종은 울리지 않았으니까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부러 지각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찍 나올 수도 있는 날도 쓸데없는 늦장을 부린 것은 솔직히 우연 아닌 우연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시간대가 항상 겹치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라고 항상 지각은 하는 것은 아니었고, 자신도 당번이니 뭐니 하며 아슬아슬하게 수업 시간을 맞출 수 없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멀찍이 창문 너머에 있는 모습 밖에 보질 못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지금 가봤자 교문 닫혔어."
내달리던 와중에 무언가가 강하게 뒤로 잡아당겨서, 하마터면 그대로 바닥에 자빠질 뻔했다. 이쪽은 죽자 사자 달리고 있는데, 무턱대고 가방을 잡아당기는 미친 자식이 어디 있지. 휘청거리던 몸을 가까스로 바로 잡고 가방끈에 쓸린 어깨를 매만지며 뒤돌아보았다. 뭐하는 짓이냐고 험악하게 튀어나오려는 단어를 꺼내려던 순간, 약간 아래쪽에 떨어진 눈높이에 보이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아무것도 아닐 텐데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설렘? 두근거림? 떨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웃긴 이야기였다. 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를 줄곧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저만큼 멀리서 허둥지둥 달려 들어가는 학생들이 어렴풋하게 보이는데, 그는 대뜸 가방끈을 쥔 채로 담을 따라 거꾸로 움직였다. 이리와, 저쪽으로 가면 뛰어넘을 만한 데가 있거든. 그 쪽이 학주한테 안 걸리고 좋아. 당연한 것처럼 그 뒤를 따라가면서, 프리드리히는 대뜸 입을 열었다.
"3학년 E반 리즈 선배, 맞죠? 체육 특기생인."
"그걸 알아서 뭐하게? 야, 빨리 가방 던져. 좀 있으면 종치니까."
놀란 듯 잠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리즈가 금방 인상을 구겼다. 멍청아, 하고 어느 샌가 제 가방을 놓고 훌쩍 가볍게 담을 뛰어오른 리즈가 뒤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그 얼굴을 저도 모르게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 중요한건 통명성 같은 게 아니었다. 수업 지각이 바로 앞까지 와있었으니까.
"뭐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참나. 너 그렇게 멍청하게 있다간 지각한다, 프리드리히."
올려주는 가방을 받아들자마자 저만큼 앞서서 운동장 한켠을 가로지르는 리즈가 태연하게 프리드리히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마치 예전부터 쭉 알고 있었던 것처럼.
어? 선배. 지금 제 이름 부른 거 맞죠? 그러니까 지금 그딴 게 뭐가 중요하냐고. 저한테는 중요한데요, 엄청 중요한데요. 누구한테 물어봤어요? 시끄러, 닥쳐.
그 순간,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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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의 압박으로 줄이다보니 이렇....게 되버렸는데 그렇다고 고치자니 축전으로 드린 글이라 애매하게 되버렸음 ( , ,
리리리즈를 처음 써봤는데 과연 이런 커플이 맞는가 고통스러웠습니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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